사랑모아 통증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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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사랑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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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14-03-18 14:11
    [매일신문] [3040 광장]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538  

    벌써 3월 하고도 중반이 지나간 지금이지만 아직도 봄을 시샘하는 동장군이 이미 저만치 가버린 겨울이 아쉬워 심술을 부리고 있는 듯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신학기가 시작되는 이맘때쯤이면 나는 중학교 1학년 시절의 첫 국어 수업 시간이 생각나곤 한다. 초등학교 시절 단지 읽고 쓰던 국어 수업 방식에 익숙해진 나에게 갓 부임한 젊은 총각 선생님의 국어 수업은 약간은 충격적인 장면으로 다가왔었다. 교과서에 온갖 형형색색의 볼펜으로 밑줄 치고, 형광펜으로 색칠하고 별표 세 개 그려 넣으면서 ‘시험에 꼭 나온데이!’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얼마나 인상 깊고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3월이라 난로도 없는 추운 교실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교과서를 울긋불긋하게 색칠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업에 열중했던 장면들이 봄이 오는 3월이 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다. 또한 학교 수업 중간 중간 쉬는 시간만 되면 학교 건물 벽에 친구들이랑 나란히 서서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기억들도, 학교 구내매점에 달려가서 빵이랑 우유로 사춘기의 한창 좋던 먹성을 달래던 기억들도, 초등학생 티를 갓 벗어나 어른도 아이도 아닌 중학생이 되어 까까머리에 까만 교복을 입고 거울을 보면서 바로 옆 여자 중학교의 학생들에게 잘 보이고자 그 나름 멋을 부려보던 기억들도, 매년 신학기가 시작되는 이맘때쯤이면 하나둘씩 나의 뇌리에 떠오르곤 한다.

    세월이 흘러 내년이면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지금, 나는 계절의 변화에 무감각해진 지 오래다. 냉난방 잘 되는 진료실에서 사시사철 반팔 가운을 입고 진료하다 보면 어느새 한 해가 훌쩍 가버린다. 그렇게 흘려보낸 세월이 몇 해던가? 개원의로서 나 나름 치열하게,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점점 계절의 변화에 무덤덤해지고, 그렇게 늙어가는 나 자신이 가끔은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중국 전한(前漢) 시대 때, 흉노 왕에게 시집간 왕소군이라는 절세미인의 처량한 신세를 노래한 후대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구절에 나오는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글귀가 봄이 왔어도 봄을 느끼지 못하는 내 마음과 비슷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혼자 쓴웃음을 지어본다.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왔건만 봄이 아니구나'라는 뜻이다.

    요즘에는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언론과 대중을 상대하는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말로 둔갑해 버렸지만, 사실 경제 한파에 얼어붙은 서민들의 마음에도, 신학기에 접어들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이 사회에 진출한 직장 새내기들에게도, 나처럼 중년에 접어든 가장들에게도, 빠듯한 살림살이에 늘 쪼들리는 주부들에게도, 봄은 이만치 다가왔건만 진정 그들의 맘속에도 따뜻하고 꽃피는 봄이 찾아왔는지 궁금하다.

    우리 모두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고개 돌려 주위를 한 번 살펴보는 여유를 가지는 건 어떨까? 사계절이 뚜렷한 아름다운 우리나라에 살면서 매년 찾아오는 봄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누릴 수 있다면 우리들의 마음 또한 한결 너그러워지고 윤택해지리라 생각한다.

    3평 남짓한 진료실에서 하루 종일 환자를 보며 지낸 세월이 벌써 13년째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매년 3월이 되면 중학교 시절의 기억들이 아스라이 떠오르는 걸 보면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 내 맘속의 감성이 아직도 내게 조금은 남아있는 모양이다. 진료실 창밖으로 보이는 회색빛 도시의 풍경은 여전히 칙칙하고 차갑게 느껴지지만, 진료실 안으로 쪼이는 한 줄기 햇빛이 일상에 찌들린 내 마음을 잠시나마 따사롭게 해 준다.

    ‘춘래불사춘’은 우리들의 마음먹기에 달린 게 아닐까? 벚꽃 구경을 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이지만 그동안 정신없이 살아오면서 변화하는 계절을 감지하지 못할 만큼 메말라버린 내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우리 곁에 다가온 봄의 징조들을 찾아서 가까운 교외라도 다녀올까 보다.

    백승희/사랑모아 통증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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