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모아 통증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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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사랑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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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17-03-22 11:55
    [매일신문] “주사가 해로우면 우리 어머니께 놓겠습니까”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38  




    15년간 방사선 노출에 손톱만 상해

    최대 피폭량에도 건강하단 증거

    치료 중 실수했을 땐 솔직히 털어놔

    의사가 환자에게 믿음 주는 방법

    매주 수요일엔 빨간 가방 들고 봉사

    北 이탈민·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

    백승희(50) 사랑모아통증의학과 원장은 의자 끄트머리에 엉덩이만 겨우 걸치고 앉아있었다. 그는 환자가 들어오자마자 “어때요?”라고 물었고, 간결한 말투로 문진하고 상담을 끝냈다. “환자들도 앉자마자 엉덩이를 떼시죠? 제가 워낙 바쁜 걸 환자들도 다 알아요. 기다리는 다음 환자를 위해 필요한 것만 묻고 얼른 진료실을 나가시죠.”

    상담이 끝나자 그는 진료실 옆 주사실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백 원장은 X-선 투시기로 신경에 생긴 염증을 찾아내 주사를 놓았다. 한 노인 환자가 “주사 자주 맞으면 해로운 거 아입니까”라고 물었다. “나이 여든 넘은 우리 어무이도 매주 이 주사를 맞습니다. 주사가 해로우면 어무이께 놓겠습니까?”

    백 원장은 진료실에 클래식 음악을 틀고 병원 곳곳에 그림을 걸었다. 주사를 두려워하는 환자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다. 진료실 한편에는 너덜너덜해진 납장갑이 놓여 있었고, 벽에는 이종 종합격투기 UFC에서 활약 중인 최두호 선수와 여자테니스 국내랭킹 1위 장수정 선수와 찍은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오랫동안 백 원장이 후원해온 선수들이다.

    ◆매일 점심 거르며 진료, 실수도 솔직히 고백

    방사선 차단 안경을 끼고 차폐복을 두른 백 원장의 모습은 마치 핵물리학자 같았다. 백 원장은 오른손에 납장갑을 겹쳐 끼고 식사시간 외에는 벗지 않는다. 지난 2002년 개원 이후 15년간 방사선을 맞은 오른손 손톱은 이미 많이 상한 상태였다. “수년 전 후배 한 명이 방사선에 피폭돼 피부암으로 세상을 떴어요. 충격을 받고 의사를 계속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죠. 그래도 국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중에 최대 피폭량을 자랑(?)하는 저도 건강하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결심했어요.”

    백 원장은 오전 8시부터 정오까지 4시간만 진료 접수를 받는다. 꼭 당일 진료를 받길 원하는 환자들을 위해서다. 이 때문에 오전에 접수한 환자가 오후 늦게까지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일도 있다. 그는 점심을 먹지 않는다. 하루 12시간씩 환자를 보는 습관이 든 탓이다. 그는 “요즘 사람들은 영양 상태가 좋아서 하루 한 끼만 먹어도 충분하다”며 웃었다. “병원을 찾은 환자가 제게 ‘돈도 좋지만 쉬엄쉬엄 하시라’는 얘기를 할 때 제일 섭섭해요. 환자를 돈벌이 대상으로 삼으면 병원이 잘 될 수가 없어요. 그저 열심히 치료하는 거죠.”

    백 원장은 “나도 사람인지라 1년에 한두 번은 실수한다”고 털어놨다. 가령 환자 왼팔에 놓아야 할 주사를 오른팔에 놓는 식이다. 대신 환자마다 병증과 치료법을 기록하고 간호사에게 일일이 확인해 최대한 실수를 줄인다. “실수했을 땐 환자에게 솔직히 말하고 안심할 수 있게 설명을 해요. 그게 믿음을 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빨간 가방 들고 봉사…왕성한 사회활동에 오해도

    백 원장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았다고 했다. 공무원인 아버지는 타 지역 전출이 잦았고, 4남매만 대구에서 함께 지내며 학교를 다녔다. 그는 중학교 입학 후 치른 첫 시험에서 1천 명 중 256등을 했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은 서서히 탈선의 길로 빠져들었다.

    그는 친구들과 지내는 대신 교과서를 폈다. 조금씩 성적을 올리던 그는 1년 만에 전교 1등으로 올라섰다. 그는 “요즘도 가끔 어머니께 ‘어무이가 내 의대 가는 데 해준 게 뭐 있노’라고 농담을 한다”고 웃었다.

    그는 의과대 진학 후에도 좋은 성적보다는 즐기는 인생을 택했다. 대학 그룹사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쳤고, 밤새 맥주를 마시다 수업에 빠진 적도 많았다. 그래도 학사경고는 받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성적을 유지했다.  

    그가 마취통증의학과를 선택한 건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도 노인 인구가 많아지니까 통증 치료가 전망이 있을 거라고 봤죠. 마침 제가 개원할 때 비수술 척추관절 치료 붐이 일었어요. 정말 운이 좋았죠. 매일 온갖 환자들을 만나면서 의사로서 점차 성장했어요.”

    그는 5년 전부터 ‘빨간 가방 아저씨’라는 별명이 붙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빨간색 왕진 가방을 들고 복지시설을 방문해 무료진료를 하는 덕분이다. 그의 병원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이나 외국인 노동자에게 무료 진료도 해준다. 그는 “진료 봉사는 환자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봉사를 나갈 때마다 의사로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되새기게 된다”고 했다.

    사람 좋아하는 그는 다양한 활동도 하고 있다. 대구시테니스협회장과 사회복지법인 자운복지재단 이사장, 경원고등학교 총동창회장, 사랑모아봉사단 단장 등이 모두 그의 직함이다. “가끔 제게 ‘정치하려고 그러느냐’는 사람들도 있어요. 말도 안 되죠. 제가 제일 빛날 때는 의사 가운을 입고 환자 볼 때예요.”

    요즘 그의 관심사는 정치가 아닌 문학이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인기를 얻어 지난해 에세이집을 출판했고, 요즘에는 소설도 쓰고 있다. “제2의 직업은 정치인보다는 작가가 좋겠어요. 책이 대박 좀 터졌으면 좋겠네요. 허허.”

    이혜진 기자 hattcha@msnet.co.kr